
해당(海堂) 이시형은 우리나라 정부 수립이전인 1945년 해운입국을 위해서는 해기사가 양성돼야 한다는 신념 아래 한국해양대학의 전신인 진해고등상선학교를 설립했다.
선정위원회는 이시형이 한국해양대 초대 학장 등 총 4회 학장을 역임하며 해기사 교육의 초석을 다지는 등 한국 해양 인재양성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시형은 1936년 도쿄해양대학의 전신인 도쿄 고등상선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조선우선㈜에 입사해 약 9년간 선원으로 근무했다. 1945년 3월에는 태평양 전쟁 중 일본 해군에 징용된 선박에 선원으로 근무하기도 했다.
해방 후 부산에 정착한 그는 해운입국의 정신으로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했다.
그 과정이 평탄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그는 무려 세 차례의 폐교위기를 극복하고 대학을 존속시키는 데 성공한다.
6·25 전쟁 중 해운대국민학교 교실 임차 학교, 거제리 천막 교사 등을 거쳤다. 전쟁 와중이어서 정부의 재정 지원은 아주 어려웠고, 학생들은 자꾸 학교를 떠나갔다. 열악한 월급에 교직원들도 하나둘씩 사직했다.
당시 젊은 이시형은 월급이 넉넉한 외항선 기관장으로 얼마든지 나갈 수 있었지만, 비가 새는 천막 교사를 전전하며 외고집으로 버틴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설립된 한국해양대는 한국 무역과 원양수산업의 개척자 역할을 하는 해기사들을 양성함으로써 한국이 선복량 기준 세계 4위의 해운강국으로 도약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정부는 지난 2010년 '제15회 바다의 날'에 해운의 황무지였던 한국을 해운강국으로 발전케 하는 데 원동력이 된 해기사 양성 교육에 초석을 다진 그의 역할을 기려 '황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