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경아 신영증권 애널리스트가 최근 "미국 조선업 상태 어떤데?" 제하의 리포트를 발표했다. 미 조선업이 쇠락했다는 얘기만 들릴 뿐 상세한 사정은 알지 못하던 터다. 엄 애널리스트의 리포트 내용을 소개한다.
리포터에 따르면 미국에서 역대 조선업을 영위했던 조선소의 개수는 414곳에 달한다. 중국 다음으로 2위에 해당하는 숫자다.
역대로 조선소가 100 곳 이상 존재했던 국가는 14개국이며, 이 중 현재 수주잔고 기준 상위 10위에 든 국가는 6곳이다. 미국은 상위 10위국들 중 탈락한 4개 국가에 속한다.
현재 미국의 조선소 중 수주잔고가 있는 조선업체는 21개사다. 이 중 12개사는 단 1척의 수주잔고만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3개사는 수주가 이뤄진 시점이 2020년 이전이어서 실제 건조가 진행되고 있는지는 확인이 안된다.
미국 조선소의 수주잔고는 46척이며, 이 중 인도예정 시기를 지나버린 선박이 15척이나 된다.
수주 선종은 국내 조선업체와는 아주 크게 다르다. 한화오션이 인수를 추진한 필리조선소(Philly Shipyard)가 소형 컨테이너선을 수주잔고로 갖고 있는 것을 제외하면 연안에서 이뤄지는 작업을 보조하는 선박들이 대부분이다.
수주 및 건조시장에서의 실적을 봐도 미국 조선업은 존재감이 없다. 올해들어 전 세계적으로 1,910척의 선박이 발주됐는데, 이 중 미국이 수주한 선박은 2척에 불과하다. CGT 기준 수주점유율은 0.04%다. 최근 10년 사이에 선박수 기준으로나 CGT 기준으로나 수주점유율이 1% 를 넘은 적은 한 번도 없다.
건조 실적도 마찬가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전 세계에서 연간 1,600여척의 선박이 만들어질 때 미국에서 제작된 선박은 연간 7척 정도다. 선박 척수 기준 0.4%, CGT 기준 0.2%의 점유율이다.
미국이 상선 분야에서 조선업을 놓아버리다시피한 이유는 분명히 있다. 미국이 해운시장에서 차지하는 역할이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해상운송서비스를 이용하는 대규모 수요자일 뿐 운송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주나 선사는 없다. 과거 씨랜드(Sea-Land), APL 등의 선사가 있었으나 씨랜드는 1999년, APL은 1997년에 각각 덴마크 머스크와 싱가포르 NOL에 인수됐다.
미국이 해운시장에서 수출수요자의 위치를 차지하는 분야는 에너지운송시장이다. 7년여의 기간 동안 수출량을 늘려 전 세계 LNG수출 1위로 올라선 미국에 한국의 대형 조선업체는 전략적 파트너 1순위에 들 수밖에 없다.
국제전략연구소(CSIS : Center For Strategic and International Studies)가 올해 6월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 팬데믹 기간 동안 미국의 전함 보유대수는 중국에 뒤쳐졌다. 미 해군의 운영 전함 척수는 219척, 중국의 운영 전함 척수는 234척(무장 소형 순찰선 제외)였다.
중국은 2012년 제18차 전당대회에서 '해양강국 건설' 계획을 발표하고 해양경제발전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후 △해군력 강화 △해외 군사기지 확보 △해상에서의 법집행 강화가 이어졌다. 계획 발표 이후 중국의 해군력 내 콜베트함 (Covettes) 배치 속도가 빨라진 것이 확인된다.
지난 8월 세계 현대군함디렉터리(WDMMW)가 발표한 세계 해군력 순위(Global Naval Powers Ranking)에 따르면 해군력 자체의 순위는 미국이 중국을 앞서 1위이지만, 전함 보유 척수는 중국이 우세하며 점점 더 격차가 커지고 있다.
한국은 항공모함을 운영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군력 순위 5위에 오를 정도로 해군력이 강하다. 전함 척수가 100척 이상 차이나는 4위 인도네시아와 비교해 보더라도 TVR(True Value Rating) 차이가 크지 않다.
중국 군함은 약 70% 가 2010년 이후에 진수된 반면 미국 군함의 경우 약 75%가 2010년 이전에 진수된 것이다. 두 국가 전함의 상대적 선령 차이는 아주 크다.
그럼에도 미국이 현재 해군력 순위에서 1위를 유지하는 것은 항공모함 보유에 있어 상대국과의 갭이 크기 때문이다. 전 세계 항공모함의 절반을 미국이 보유하고 있다.
반면 중국은 10년 이내에 순양함과 구축함, 호위함의 총 배수량에서 미국을 앞지를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상선 건조능력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조선 생산성은 의미있는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이미 미국에서 정비가 필요한 함대의 수가 늘어나고, 퇴역을 앞두고 있는 전함이 줄을 서 있지만 이를 대체할 수 있는 생산성을 미국 내에서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난해 한국과 일본은 각각 전 세계 선박의 26%, 14%를 건조하며 합산기준 전 세계 선박 건조량의 40%를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전통적인 조선업의 발전단계에서 브레이크를 걸어버린 일본과 달리 한국은 신규 추진에너지 선박 건조기술력과 대형화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종료 이후 수십년에 걸쳐서 선진국 퇴역 전함을 도입하고 점진적인 기술 국산화 과정을 거쳐왔다.
국내 조선업체 중 해양방산부문에 납품 이력이 있는 조선업체는 4곳이다. 대형업체는 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이고 중소형 전문업체는 HJ중공업과 SK오션플랜트가 있다. 잠수함 구축함 등에 엔진을 공급하는 업체는 STX엔진을 들 수 있다.
카타르의 발주가 전체 LNG 운송시장의 파이를 키웠듯이 미국의 해양방산 수요 증가는 상대국의 해양방산 수요를 키우는 촉매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방력의 보충은 상대적이라서 수요가 동시다발적으로 늘어나게 되고, 제한적인 공급자들에게는 협상력이 생기는 구조다. 그런 만큼 전망이 밝다.
특히 미국 조선업이 가지고 있지 못하는 대규모 생산능력에서 차별점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중소형 업체보다는 대형업체에 대한 선호도가 더 높다.
얼마 전 한화오션의 거제사업장에 미국 해군의 군수지원함이 창정비 수행을 위해 입항했다. 2025년에도 시범적으로 해외 조선소에서 선박을 수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행법상으로는 해외 조선소에서 미국 선박을 건조하는 것이 제한적이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향으로 문제가 풀릴 것으로 보인다.
미국내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한화오션보다 HD현대중공업의 선호도를 더 높게 가져간다.
양사 모두 미국 해군보급사령부와 함정정비협약(MSRA : Master Ship Repair Agreement)을 맺는 등 MRO 사업 참여 자격을 갖추었다. 군함관련 수주물량이 없을 때에도 미국 현지사업장을 일정 수익성 이상 유지하기 위해서는 한화오션의 투자가 전제돼야 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