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코그룹이 HMM 인수 추진을 표면화시켰다.
그룹 차원의 새 먹거리 창출을 위해 3, 4개월 전부터 장인화 회장과 포스크플로우 반돈호 사장이 물밑 움직임을 보여오다 최근 여건이 성숙했다고 보고 이를 표면화시킨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포스코는 HMM 인수 준비를 위해 삼일PwC, 보스턴컨설팅그룹 등과 계약을 맺고 대규모 자문단을 꾸렸다.
회계법인과 로펌, 컨설팅 업체를 대거 고용해 HMM의 사업성을 검토하고 구체적인 인수 전략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HMM 대주주는 산업은행(36.02%)과 한국해양진흥공사(35.67%)다. HMM의 자사주 공개매수가 이달 중순 마무리되면 산은과 해진공 보유 지분은 각각 30%대 초반으로 떨어진다. 포스코는 산은 보유 지분을 인수해 최대주주에 오르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지분 매각 의사가 크지 않은 해진공과 공동 경영 체제를 구축하겠다는 구상이다.
애초 HMM 몸집이 너무 커져 해진공 지분까지 한꺼번에 사들이는 것은 부담이 작지 않은 상황이기도 하다. HMM의 시가총액은 23조원에 이른다. 산은이 보유한 지분 가치는 약 7조원이다. 포스코홀딩스의 지난 2분기 말 기준 보유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7조23억원이다. HMM을 인수하기 위한 자금 여력이 빠듯한 편이다.
■ 인수 추진 막전 막후
산은과 해진공은 지난해 초 하림그룹과 HMM 매각을 위해 진행하던 협상이 최종 결렬된 뒤 매각 작업을 잠정 중단했다.
포스코가 눈에 띄게 움직인 것은 이때부터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장인화 회장이 강석훈 산업은행장에게 퇴임 전 직접 연락을 취해 HMM 인수의사를 밝힌 것으로 안다"며 "이후 강 회장이 퇴임하면서 이 일은 유야무야됐다"고 전했다.
이후 포스크그룹은 포스코플로우를 동원, 한국해운협회에 협조를 잘해 사장단연찬회에서 감사패를 받거나 소위 '빅 마우스'로 통하는 인사들과 접촉하는 등 해운업계 '여론 다지기'에 들어갔다.
서울은 물론 부산 등지를 누비며 해양산업계 중량급 인사들과 접촉했다.
접촉 인사 중에는 '이재명 대선 캠프' 인사도 여럿 포함됐다.
지난달 28일에는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안병길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과 반 사장이 같이 앉은 모습이 목격됐다. 당사자들은 말을 아꼈지만 이 자리에서 반 사장은 안 사장에게 HMM 인수의사를 밝히고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관계자는 "포스코플로우가 안 사장을 만나기 위해 여러 차례 연락을 했다"며 "안 사장의 경우 다다익선, 인수 희망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좋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보이며 포스크에 일정 거리를 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 포스코, 연간 자체 물류비 3조에 '눈독?'
포스코가 해운업을 신사업 후보군에 포함하고 HMM 인수를 위한 내부 스터디에 들어간 것은 작년 말로 파악된다.
시초는 포스코플로우에서 올린 보고서로, 중소 그룹사들이 경쟁하는 혼전에서 포스코가 나설 경우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것이 골자다.
삼일PwC와 보스턴컨설팅그룹 등 자문단을 꾸리고 본격적 인수 준비에 나선 것도 이 즈음이다.
포스코는 해운업에 눈을 돌린 것은 본업인 철강 사업이 부진한 가운데 신사업인 2차전지 소재까지 주춤해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장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철강 및 2차전지 소재와 시너지를 이루며 그룹 사업 포트폴리오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미래 신사업을 육성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포스코가 해운업과 인연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포스코는 포항제철 시절 거양해운을 운영하다 1995년 한진해운에 매각한 바 있다.
포스코는 HMM을 인수하면 그룹의 오랜 고민거리인 물류 불확실성과 비효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포스코는 유연탄과 철강재, 배터리 소재 원료 등을 수입하는 데 그룹 전체가 연간 3조원에 달하는 물류비용을 쓰고 있다.
■ 여론 향배가 관건
문제는 포스코도 물류를 자체적으로 소화하려는 '욕심'이 있지만 해운업계가 강력하게 반발한다는 점이다.
포스코 내부 회의에서도 "(철광석 등) 장기계약물량을 남 줄 것 있느냐"는 의견이 일부 나왔지만 선뜻 이를 공식화하지 못하고 있다. 물류사업 진출이 2자 물류를 통해 3자 물류업체들의 '밥그릇'을 뺏으려는 것이냐는 해운업계의 반발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HMM이 컨테이너선 중심 선사라는 것도 벌크선 중심의 철강사업을 하는 포스코의 사업 방향성과 결이 맞지 않는다.
여기다 포스코ENC 사태로 이재명정부와 불편을 겼었다는 것도 변수다.
이와 관련해서는 반응이 엇갈린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HMM 인수가 표면화됐다는 것은 포스코가 이재명정부와 연결고리를 찾았다는 것을 시사한다"며 "정치적 불편함은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도 기존의 국민의힘 중심에서 벗어나 더불어민주당쪽 접촉을 한층 강화하는 기류가 뚜렷하다. 해운업계에서는 컨택 포인트로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 어기구 국회 농해수위 위원장 등의 이름이 나온다.
한편 포스코는 부정적 여론이 있는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국민기업을 표방하는 포스코가 이차전지와 건설업이 침체하자 제조업을 부흥시킬 생각은 않고 해운업으로 눈을 돌려 국면전환을 꾀하느냐"는 지적을 가장 아프게 받아들이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