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사기구(IMO)의 넷제로 프레임워크(Net-Zero Framework)가 미국과 주요 산유국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심적인 규제 구조를 유지한 채 연말 채택을 향한 협상을 이어가게 됐다.
IMO는 9월 1일부터 4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제22차 온실가스 감축 회기간 실무회의를 열고 선박 GHG 배출 규제와 탄소가격 메커니즘 등을 집중 논의했다.
이번 회의에는 1,000명 이상의 대표단이 등록했으며, 논의 결과는 11~12월 열리는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85에 제출될 예정이다.
이번 협상의 최대 쟁점은 역시 탄소가격제였다.
회의 참관인들에 따르면 발언에 나선 국가 가운데 38개국은 탄소가격과 이에 따른 수익 메커니즘을 넷제로 프레임워크의 핵심으로 유지하는 데 명확한 지지를 나타냈다.
반면 주로 산유국을 중심으로 한 17개국은 글로벌 탄소가격제가 해운비용을 높이고 자국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IMO 넷제로 프레임워크는 크게 두 축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는 기술적 요소다. 선박이 사용하는 해양연료의 온실가스 집약도를 단계적으로 낮추는 글로벌 해양연료 표준을 도입하는 것이 골자다.
두 번째는 경제적 요소인 GHG 배출 가격제다. 상대적으로 탄소배출이 많은 선박에는 비용을 부담시키고, 저탄소·무탄소 연료를 사용하는 선박에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구조다.
IMO는 이 두 장치를 결합해 선사의 연료 전환을 유도한다는 구상이다.
특히 탄소가격제를 통해 조성되는 재원의 규모와 사용처가 협상의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체계가 도입될 경우 연간 100억~150억 달러 규모의 재원이 조성될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문제는 이 비용을 누가 부담하고, 확보된 재원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다.
선사 입장에서는 탄소가격제가 사실상 새로운 운항비용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저탄소 연료의 가격이 기존 화석연료보다 높은 상황에서 탄소가격까지 추가되면 선박의 연료비와 운송원가가 동시에 상승할 수 있다.
반면 유럽 국가들과 태평양 도서국, 노르웨이 등은 탄소가격 신호가 약화될 경우 선사와 연료 공급업체의 대체연료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협상에서 미국과 일부 산유국들은 기존 프레임워크의 일부를 수정하거나 대체할 것을 요구했다.
라이베리아는 배출규제를 저탄소 연료의 실제 이용 가능성과 가격 경쟁력에 보다 밀접하게 연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브라질 역시 기본적인 프레임워크는 유지하되 초기 목표 수준을 완화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중국은 풍력추진, 육상전원공급, 태양광 등 다양한 기술을 규제 체계에서 보다 폭넓게 인정하는 유연한 접근을 요구해왔다.
반면 호주, 캐나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영국 등은 기존 구조를 대체로 지지하면서 탄소가격제를 통해 확보되는 재원의 징수와 분배 방식에 대한 세부 규칙 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처럼 국가별 입장 차이는 상당하지만, 이번 협상에서는 기존 프레임워크를 근본적으로 뒤집을 만큼의 대안이 다수의 지지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넷제로 프레임워크가 최종 채택될 경우 해운업계가 주목하는 부분은 규제 자체뿐 아니라 탄소비용의 운임 전가다.
컨테이너선, 벌크선, 유조선 등 대형 선박은 연료 소비량이 많기 때문에 탄소가격제가 적용되면 항차별 비용 증가폭도 커질 수 있다.
특히 기존 선박과 신조선 간의 경쟁력 차이도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 LNG 이중연료, 메탄올, 암모니아 등 대체연료를 사용할 수 있는 선박은 규제 대응력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반면, 노후 단일연료선은 추가적인 탄소비용 부담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IMO가 추진하는 넷제로 프레임워크는 단순한 환경규제를 넘어 선박의 연료 선택과 신조선 투자, 선대 개편, 연료공급 인프라, 해상운임 구조까지 동시에 변화시키는 경제 규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IMO는 오는 11월 23~27일 제2차 회기간 실무회의를 개최한 뒤 11월 30일~12월 3일 MEPC 85에서 넷제로 프레임워크를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이후 12월 4일 임시 MEPC 회의에서 채택 절차가 진행될 전망이다.
IMO는 2025년 4월 MEPC 83에서 이미 넷제로 프레임워크의 법적 초안을 승인했다. 당초 2025년 공식 채택을 목표로 했지만 논의가 연기되면서 현재 2026년 말 채택을 위한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