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미국법인인 삼성전자 아메리카(SEA)가 프랑스 선사 CMA CGM을 상대로 미국 연방해사위원회(FMC)에 최소 1억 8,600만 달러(약 2,790억 원)의 배상을 요구하는 공식 제소에 나섰다.
이번 사건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발생한 미국 내 항만·철도·트럭 운송망의 병목과 이를 둘러싼 체화료(Demurrage)·컨테이너 지체료(Detention), 철도 보관료 및 화물 인도 문제를 둘러싼 분쟁이다.
국내 해운업계는 초대형 화주인 삼성전자가 국적선사를 제쳐둔 채 해외 선사를 이용하다 애로를 겪게 됐다며 "고것 쌤통이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FMC는 9월 1일 삼성의 제소를 정식 사건으로 접수하고 사건번호 26-12, Samsung Electronics America, Inc. v. CMA CGM S.A.를 부여했다.
FMC 공고에 따르면 삼성은 CMA CGM이 미국 해운법(Shipping Act)과 관련 규정을 위반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사건은 행정법판사 심리에 배정됐다.
삼성이 요구한 배상액은 최소 1억 8,600만 달러다.
이 가운데 약 1억 4,800만 달러가 부당하게 부과됐다고 주장하는 체화·지체료와 철도 보관료 등이며, 약 810만 달러는 운송 차질을 완화하기 위해 삼성 측이 부담한 운영비용이다. 여기에 약 3,000만 달러의 선이자가 포함됐다.
이는 지난해 Bed Bath & Beyond의 관리인이 OOCL을 상대로 제기한 약 1억 6,100만 달러 규모의 청구액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당시 FMC는 OOCL 사건에서 약 4,500만 달러의 배상을 명령했다.
따라서 이번 삼성 사건은 팬데믹 이후 미국 해운 규제당국에 제기된 선사 대상 분쟁 가운데서도 규모가 가장 큰 사건으로 평가된다. 다만 현재 단계에서 1억 8,600만 달러는 삼성이 요구하는 배상액이며, FMC가 이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단순한 해상운임이나 항만 체화료 분쟁이 아니다.
삼성은 2020년부터 미국 수입화물에 대해 CMA CGM과 ‘스토어 도어(Store Door)’ 방식의 운송계약을 체결했다. 이는 선사가 항구까지의 해상운송뿐 아니라 미국 내륙의 최종 목적지까지 철도와 트럭 등을 이용한 복합운송을 책임지는 구조다.
삼성 측 주장에 따르면 CMA CGM은 이 같은 계약에 따라 미국 항만에서 내륙 목적지까지 운송할 의무를 부담했음에도 팬데믹 이후 항만 혼잡과 철도 새시 부족 등을 이유로 내륙운송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발생한 추가 비용의 상당 부분이 삼성 측에 전가됐다는 것이 삼성의 주장이다.
삼성은 2020년 이후 CMA CGM으로부터 12만 1,000건 이상의 체화료·지체료 및 철도 보관료 청구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 측은 이들 비용 상당수가 자사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항만 혼잡과 철도 운송 지연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특히 컨테이너가 미국 항만에서 하역된 이후 철도 운송망에 진입하는 과정에서 지연이 발생하면 컨테이너가 터미널이나 철도 램프에 장기간 머물게 된다. 이때 발생하는 보관료와 D&D 비용이 누적되면서 한 건의 화물에서 수천~수만 달러의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
삼성이 제시한 사례 중에는 2021년 여러 컨테이너가 내륙 철도 램프에 도착한 뒤 CMA CGM이 계약상 내륙운송 의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있으며, 이 과정에서 370만 달러 이상의 철도 보관료가 누적됐다고 삼성은 주장했다.
삼성은 또 CMA CGM이 당초 선사가 책임져야 하는 내륙운송 구간을 사실상 화주 책임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계약 구조를 변경하거나 운송 책임을 회피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특히 일부 화물에 대해 머천트 홀리지(Merchant Haulage)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삼성 측에 추가적인 운송·보관 부담이 발생했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머천트 홀리지는 화주 주도 내륙운송을 뜻하며, 이는 이번 사건에서 중요한 법적 쟁점이 될 전망이다.
‘스토어 도어’ 계약을 체결한 선사가 항만 하역 이후의 철도·트럭 운송까지 책임지기로 했다면, 해당 구간에서 발생한 지연과 비용을 어느 범위까지 화주에게 전가할 수 있는지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사건은 “해상운송 계약에 포함된 내륙운송 서비스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을 때 발생한 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라는 문제로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은 또 CMA CGM이 미지급 또는 분쟁 중인 D&D 청구액을 해결하도록 압박하기 위해 ‘파이낸스 홀드(Finance Hold)’와 계정 정지 등의 조치를 취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파이낸스 홀드는 대금 문제로 인한 화물·컨테이너 반출 보류를 의미하며, 삼성에 따르면 분쟁 중인 특정 화물의 비용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수입화물의 인도까지 제한하는 방식이 사용됐다는 것이다.
이 같은 조치가 실제로 계약상 또는 해운법상 허용되는 범위였는지가 향후 FMC 심리에서 주요 쟁점으로 부상할 수 있다.
FMC는 이번 사건에서 CMA CGM의 D&D 비용 부과, 내륙운송 의무, 화물 보류, 청구 및 분쟁 해결 절차 등을 종합적으로 들여다볼 예정이다.
공식 사건 공고에도 이 같은 삼성 측 주장이 명시돼 있다.
이번 사건은 팬데믹 당시 글로벌 공급망 혼란이 해운사와 대형 화주 사이에 남긴 법적·상업적 갈등이 여전히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2020~2022년에는 미국 주요 항만에서 선박 대기와 컨테이너 적체가 심각해졌고, 항만을 빠져나온 컨테이너도 철도와 트럭 운송망의 병목으로 최종 목적지에 제때 도착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 과정에서 컨테이너가 터미널이나 철도 램프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D&D 및 보관료가 급증했다.
화주들은 자신들이 통제할 수 없는 공급망 장애 때문에 발생한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선사들은 계약상 비용 부과 기준과 화주의 반납·회수 의무 등을 근거로 맞섰다.
미국 FMC가 팬데믹 이후 D&D 관행을 집중적으로 들여다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삼성과 글로벌 컨테이너선사 간 D&D 분쟁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FMC 자료를 보면 삼성전자 아메리카는 이미 중국 선사 COSCO와도 별도의 D&D 관련 사건을 진행 중이며, OOCL과의 사건 역시 FMC 기록에 남아 있다.
이번 CMA CGM 사건은 이러한 분쟁의 범위가 다시 확대됐다는 의미도 갖는다.
특히 삼성처럼 미국 전역에 대규모 유통망을 갖춘 글로벌 제조기업이 선사의 해상운송 뿐 아니라 내륙운송과 D&D 청구 관행까지 규제당국에 문제를 제기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크다.
CMA CGM은 FMC에 제소 사실이 송달된 이후 25일 이내 답변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후 행정법판사의 심리가 진행되며, FMC 공고상 초기 결정은 2027년 9월 1일까지, 최종 결정은 2028년 3월 15일까지 예정돼 있다.
따라서 이번 사건은 단기간에 결론이 날 가능성보다 장기간의 법적 공방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FMC가 삼성 측 주장을 상당 부분 받아들일 경우 향후 선사와 대형 화주 간 D&D 부과 기준, 스토어 도어 계약의 내륙운송 책임, 화물 인도 보류 관행, 분쟁 중 비용의 처리 방식 등에 영향을 줄 수 있다.
반대로 CMA CGM이 계약상 운송책임과 비용 부과가 정당했다는 점을 입증할 경우 화주 측의 D&D 비용 환급 요구에 일정한 제동이 걸릴 수도 있다.
이번 사건의 본질은 단순한 1억 8,600만 달러 비용 분쟁을 넘어선다. 팬데믹 당시 공급망 병목으로 발생한 비용을 해운사와 화주 가운데 누가 부담해야 하는지를 둘러싼 대표적인 사후 분쟁으로, FMC의 최종 판단에 따라 미국 컨테이너 해운시장의 D&D 비용 투명성과 내륙운송 책임 구조에 큰 파장이 예상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