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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항만/물류

VLCC 운임, ‘서킷브레이커’ 수준 급등

대서양 항로 강세 두드러져. SEB, "지수보다 현장 체결가 10만 달러 더 높아"

  • 등록 2026.08.20 20:52:17

 

글로벌 초대형 원유운반선(VLCC) 시장이 사실상 ‘서킷브레이크’ 수준의 급등 국면에 진입했다.

 

중국의 원유 수입 확대, 호르무즈 해협의 지정학적 리스크, 선복 부족 등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수에즈 운하 동·서측 시장이 모두 급등하는 이례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노르웨이 선박중개업체 펀리스(Fearnleys)는 최근 시장보고서에서 “VLCC 운임이 모든 항로에서 폭등하고 있으며, 수에즈막스와 아프라막스 시장까지 동반 상승해 사실상 ‘브레이크’ 수준의 시장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특히 대서양 시장의 상승세가 두드러진다.

 

브라질–중국 항로는 최근 WS(Worldscale) 197.5 수준에서 계약이 체결됐으며, 서아프리카–중국 항로에서도 WS 200을 웃도는 거래가 거론되고 있다.

 

미국 걸프만(US Gulf)발 중국향 항로 역시 급등세다.

 

탱커스 인터내셔널(Tankers International)에 따르면 그리스 선주와 연계된 VLCC 1척은 최근 미국 걸프–중국 항로에서 약 2480만달러의 일시금으로 성약됐다. 이는 일일 수익 기준 약 26만 달러에 해당한다.

 

앞서 장금상선이 운영하는 VLCC 역시 같은 항로에서 약 2220만달러(하루 25만 2,000달러)에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불과 수일 전 수준과 비교해도 급등한 수치다.

 

현재 시장에서는 실제 거래가격이 공식 운임지표를 크게 앞서고 있다.

 

스칸디나비아계 은행 SEB는 발틱해운거래소(Baltic Exchange)가 미국 걸프–중국 항로를 일일 약 14만 6,000달러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실제 성약은 25만~26만 달러 수준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공식 운임지수와 실제 시장 가격 사이에 하루 10만 달러 이상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의미다.

 

SEB는 “현재 성약 사례가 지속된다면 시장의 4분기 실적 전망과 유조선 기업가치 평가가 지나치게 보수적일 수 있다”며 탱커 관련 주식의 추가 상승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번 VLCC 강세의 배경에는 중국의 공격적인 원유 매입이 있다.

 

중국 정유사의 전략비축(SPR) 수요가 늘어나면서 브라질, 서아프리카, 미국 걸프만 등 장거리 원유 수송이 증가하고 있다. 장거리 운송은 선박 한 척이 수행할 수 있는 항차 수를 줄여 실질적인 선복 공급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낸다.

 

여기에 호르무즈 해협 리스크까지 겹치면서 시장의 선복공급은 더욱 타이트해지고 있다.

 

AIS(자동식별장치)를 끄고 운항하는 선박이 늘어나고, 일부 선주들이 호르무즈 통항을 기피하면서 실제 가용 선복은 통계상 숫자보다 훨씬 적다는 분석이다.

 

걸프 지역에서는 운임 상승이 더욱 극적이다.

 

발틱해운거래소 자료에 따르면 이번 주 중동–중국 항로의 VLCC 수익은 하루 약 51만 달러까지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호르무즈 통항 위험을 감수하는 일부 선박의 경우 하루 55만 달러 수준까지 거론된다.

 

실제로 시장에서는 적절한 위치에 선박을 보유한 선주들이 막강한 협상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펀리스는 “수에즈 운하 동·서측 모두 선박 포지션 리스트가 시간 단위로 줄어들고 있다”고 분석했다.

 

운임 상승은 선박 가치에도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시장에서는 최신 사양의 VLCC 가격이 1억 3,000만 달러 이상으로 평가되고 있다.

 

중동 국영 에너지기업들도 선복 확보에 나서고 있다.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 계열 ADNOC Logistics & Services는 최근 13억 달러를 투자해 VLCC 6척과 VLGC 5척을 확보했으며, 이 가운데 상당수는 즉시 투입이 가능한 중고선이다.

 

이는 중동 산유국들이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수출 통제를 강화하기 위해 선박 확보를 전략 자산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VLCC 시장은 단순한 운임 상승을 넘어 구조적 변화 국면에 진입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오늘 비싸다고 생각한 운임이 며칠 뒤에는 오히려 저렴해 보일 수 있다는 말까지 나돈다"고 전했다.

 

펀리스는 해운업계의 오래된 격언을 인용해 현재 상황을 요약했다.

 

“시간과 조수(Time and Tide)는 누구도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는 현재 VLCC 시장이 단순한 단기 급등이 아니라, 지정학과 에너지 안보가 결합한 새로운 원유 해상운송 질서 속에 들어섰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표현으로 해석된다.